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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찰

감응사
감승사는 신라 애장왕(哀壯王) 때 건립한 사찰로서 한 개마을 뒤족 영취산(331.7m)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사찰의 창건과 관련해서 연기(緣起)가 전해지고 있는데, 계림지에 의하면 신라왕자의 눈이 아파 앞을 볼 수 없었는데, 어느 날 꿈에 나타난 스님의 말을 듣고 독수리가 날아가 앉은 이곳의 약수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약수가 나는 곳을 옥류정(玉流井)이라 부르게 하고 승려 체징(體澄)으로 하여금 절을 짓게 하였다. 이때가 애장왕 3년(802)이었는데, 처음엔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가, 후에 감응암(感膺庵), 암응사(感應寺)라 개칭하였다. 산이름도 신령스러운 독수리산이란 뜻에서 영취산이라 하였다.
법당 뒤에 있는 옥류정 약수터 석벽에 용왕대신이 양각되어 있는데 조선 중엽에 이루어진 것으로 산꼭대기 정상부에 용왕대신을 새겨놓은 것은 감응사가 처음이라고 한다. 야담에 감응사는 매년 음력 3월3일 석벽에 새긴 용왕대신 앞에서 용왕제를 올려왔는데 신임 주지가 거부하자 갑자기 옥류정의 물이 탁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제를 지내니 물이 맑게 변했다고 한다.

감으사는 창건 후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숙종2년(1675)에 중창하였고, 그 후로도 조선 영조·정조대에 중수가 있었다. 지금의 불우(佛宇)는 1970년 주지였던 평타(平陀)가 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세운 것들이다. 대웅전 뒤편 암벽 하단에는 약수가 솟는 옥류정이 있고, 주위 암벽에는 각자(刻字)가 많이 새겨져있다. 약수상단에 부조(浮彫)의 용왕상이 새겨져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3호

삼봉서당
이 건물은 조선후기 대표적인 유학자의 한 사람인 이진상(李震相 1818-1886)을 향사(享祀)하는 서당이다.
이진상은 본관이 성산(星山)이며, 자(字)는 여뢰(汝雷), 호(號)를 한주(寒洲)라 하였고, 한고(寒皐) 이원호(李源祜)의 아들로 공조판서를 지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의 조카이다. 그는 경사(經史)에 밝고 성력(星歷), 산수(算數), 의약(醫藥), 복서(卜筮)에 이르기 까지 능통하였고 심즉리(心卽理)설을 주장,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통을 계승한 대학자였다. 특히 그의 문하에 아들인 이승희(李承熙), 곽종석(郭鍾錫), 장석영(張錫英)등의 주문팔현(洲門八賢)의 학파를 위시한 학파를 형성할 수 있을 정도의 쟁쟁한 제자들이 배출되었다

서당은 삼봉산(三峰山)의 산록을 배경으로 동향하여 전면에 정면 5칸, 측면 2칸 반의 강당을 중심으로 좌우로 정면 3칸 규모의 경거재(敬居齋-東齋)와 성존실(誠存室-西齋)를 배치하고 성존실 뒤쪽에 고직사(庫直舍)가 강당의 오른쪽에 장판각(藏版閣)이 위치하고 있다.
모선재
선암 이언상(膳庵 李彦相을 추모하여 세운 재실이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3호

일강정
한개마을 앞 백천 가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월봉 이정현이 일찍이 범주소회(泛舟溯 정자앞에 전원(田圓) 풍산(豊山) 류도헌(柳道獻)이 찬하고 보국숭록대부 김성근(輔國崇祿大夫 金聲根)이 쓴 월봉 이전형의 유허비가 있다.
  • 종가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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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도실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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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사댁